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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듣는 것'과 '주의 깊게 듣는 것'의 차이
마르쉘 뒤샹이 재발견한 일상의 가치들
괴테에서 헨리 밀러까지 관찰을 위한 예술 훈련법
관찰을 통해 깨닫는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

 

내 작업은 눈에 익숙한 것들을 내가 어떻게 보는지를 '보는'지점에서 시작된다.

- 화가 재스퍼 존스

 

당신이 보고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라. 자신이 가장 생각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하라.

-화가 마르셀 뒤샹

 

나의 세계가 남들과 다른 것은 소리, 냄새, 형상의 요철, 질감으로 느껴지는 것이 전부였다.

- 생물학자 제라트 버메이

 

음악은 우리에게 '그냥 든는 것'과 '주의 깊게 듣는 것'을 구분하도록 한다.

-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관찰이 무엇인지 듣기의 차원에서 잘 표현해준 말인 것 같다. 영어 표현에서도 sound 와 listen이 있듯이, 우리는 모든 소리에 둘려쌓여 24시간을 지낸다.

작곡가라 그런 것인지 음악과 작곡에 대한 고민을 담긴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연구자로써 가져야할 관찰에 대해서 insight를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지식은 관찰에서부터 시작된다. 관찰은 수동적으로 보는 행위와 다르다.

 

[1] '수동적인 보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관찰' 

나는 본 장의 가장 첫 문단이 가장 임팩트 있다고 느껴졌다.

왜 관찰이 가장 첫번째로 등장할 수 밖에 없는지, 두 문장으로 간결하게 풀어내었다.

관찰로 패턴들을 구분해내고, 그것들로부터 원리를 추출해내며 유사성을 이끌어내고 모델링을 할 수 있다.

 

결국 연구의 시작도 "좋은" 관찰이었다. (흔히 통찰력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잠깐 옆길로 새어서 한자어 "찰(察)에 대해 살펴보았다.

 

뜻풀이: 신성한 제의(祭儀)와 그를 가두는 집이나 공간()이라는 요소의 합성이다. 따라서 신의 계시 등을 다루는 조심스러운 행위, 더 나아가 살피고 따져보는 일의 새김을 얻었다고 풀 수 있다.

(출처: www.hankyung.com/opinion/article/2018041981701)

 

 

내 주 연구분야인 "수학적 모델링"의 시작점이 여기에 있었던 것 같다.

본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놓치고 있는 당연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p.61 실제로 많은 화가들은 "손이 그릴 수 없는 것은 눈이 볼 수 없는 것이다"라는 말을 믿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목표는 뭔가를 써내려가듯 쉽게 뭔가를 그리는 것이었고, 자신이 본 것을 나중에 마음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잘'보는 능력을 갖는 것이었다.

 

=> 나에게는 내가 본 시스템과 현상을 수학적으로 제약없이 풀어내는 것(?) 정도로 목표를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실제로 눈으로 보이는 거대한 현상을 핵심만 뽑아내어 간결한 수식으로 표현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 정도를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2] 관찰은 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참을성 있게 보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찾으려 하는지가 중요하다.

 

"장구한 시간에 걸쳐 풍화된 돌들로 뒤덮인 이집트 사막에 이빨 화석 하나가 있다 한들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 그건 마치 책 한권에 단 한번 나오는 단어를 책장을 휙휙 넘기면서 찾는 일과 같다."

 

순간적으로 사물의 정수를 잡아내는 것을 배워야 한다. =>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_@

 

어린 시절 시력을 잃은 생물학자 제라트 버메이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데,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자연에 관한 많은 지식은 책에서 얻어진다. 그러나 이렇게 획득된 지식은 한번 걸러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관찰을 대체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3] '그냥 듣는 것'과 '주의 깊게 듣는 것'의 차이

 

'그냥 듣기'보다는 '주목하기'를 요구하는 현대미술을 떠올려보자.

 

결국 이것은 수동적인 것과 적극적인 것의 차이를 나타낸다.

 

이 부분 역시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문제를 진지하게 대하고 근원적인 고민을 해보았는가?

 

본 파트에서는 특히 예술적인 측면에서 예시를 들었다. 음악에서의 듣기와 미술에서의 보기를 제시해주었지만,

 

공학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부터 그냥 통상적으로 해왔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 "그냥 듣는 것"이라면,

 

이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확인해보는 것이 "주의 깊게 듣는 것" 아닐까?

 

이런 과정에서 얻어진 결과물은 좋은 연구 결과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D

 

 

 

[4] 마르셀 뒤샹이 재발견한 일상의 가치들

 

p.69 위대한 통찰은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 (sublimity of the mundane', 즉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는 매우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을 감지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온다.

 

이 파트에서는 보다 공학/이학을 다루는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예시가 많이 나왔다.

 

아르키메데스의 부력 이라던지, 피타고라스가 음의 놈낮이를 발견한 것..

 

그 외에 갈변 현상, 왜 하늘이 하늘색인 가 등에 대해 의문을 갖고 그 대답을 찾아냈던 사례들에 대해 소개가 되었다.

 

 

그리고 나서는 과학이외에도 현대미술로 소재를 옮겨 비슷한 예시를 설명해주는데, 

 

p.71 "진정한 창조자는 가장 평범하고 비루한 것들에서도 주목할 만한 가치를 찾아낸다." - 스트라빈스키

 

p.73 객관적 관찰은 가능한 것이 아니다.

 

p.73 사고라고 부르는 인지작용은 지각 너머의, 지각보다 상위에 있는 정신적 과정이 아니라 지각 자체를 이루는 본질적 요소다. - 루돌프 아른하임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 이 말에는 나도 동의한다. 쉬운 속담 중에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한대로 보고 (또는 보고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대로 듣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 단락에서는 일상의 재발견에서 논하다가 왜 갑자기 이러한 예시가 나오는지 생각해보았다.

 

마지막 단락에 그 해답이 있었는데, '관찰'은 '생각'의 한 형태이고 생각은 관찰의 한 형태다. 결국 관찰행위의 목적은 감각적 경험과 지적 의식을 가능한 한 가깝게 연결하는데 있다. 

 

p.74 어떤 것을 그릴 수 있다고 해서, 그리는 행위가 당신을 화가로 만들어 주는게 아니다. 에술은 당신 머릿속에 있는 것이고 당신이 어떻게, 무엇을 생각하느냐의 문제다" - 베벌리 페퍼 (조각가)

 

 

[5] 괴테에서 헨리 밀러까지. 관찰을 위한 예술훈련법

 

p. 76 많은 과학자들 역시 관찰력을 기르는 방법의 하나로 미술을 들고 있다. "그리지 못한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한 것이다."

 

p. 77 관찰은 음악을 공부하면서도 키울 수 있다.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귀를 아주 정교하게 훈련해야 한다. 

 

 

[6] 관찰을 통해 깨닫는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

 

관찰을 통해 세속적인 것을 다시 보라는 것.

 

 

 

관찰의 중요성과 그것을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 알려준 것이 생각 도구 첫 번째, 관찰이라 하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