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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에서는 특히 새겨둘 만한 문장이 많았다.



첫 번째, 중세에서는 전인적인 교양인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였고, 젊은 세대가 스스로 관심을 갖고 각자 자기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점.

현대 사회는 학문의 체계가 구체화되면서 더 조직화 됨에 따라 체계를 갖추었다는 장점은 있지만, 다소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형태가 많다.

대학교 때 배웠던 교과목들 중 대부분이 대학원와서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찌보면 내가 지금 대학원에 입학해서 배우는 것이, 이러한 논리를 처음부터 세우고 거기에 맞춰 나의 목표를 향해 성공적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학기에 만났었던 수학과 교수님은 논리가 무너지는 상황을 싫어하셨다. 그 이유는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결국 대학원의 학문이라는 것도 인류가 걸어온 길에 한 발자국 내가 더 내딛는 것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새롭다거나, 패러다임을 뒤집는다던가 등의 혁신보다는 공학계에 0.1 %라도 나은 무엇인가를 기여하자 라는 마인드셋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




두 번째, "공부하는 노동자".

공부에 대한 본질을 잘 전달해주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 괴로움 95%, 해탈 4% 그리고 나머지 즐거움으로 구성되는 것 같다.

누군가가 하지 못했던 문제 또는 어려워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석사 시절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인데, 박사 과정에 오면서 당연히 기대하는 수준이 높아지고 이에 부응하려면 조금 더 까다롭고 어려운 문제를 잡아 파고들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분명히 실력이 늘긴 하지만, 연구는 늘 제자리 걸음인것 같고, 일상이 슬럼프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것이 슬럼프나 실패의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 깨닫고 마음가짐을 고쳤는데, 바로 이것이 노동이라는 부분과 연결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 그 과정 속에는 요행과 편법이 없다는 것. 그게 바로 노동의 본질 아닐까?



세 번째,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갈등과 긴장과 불안의 연속 가운데서 일상을 추구하게 도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내가 연구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등 무엇을 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평안과 행복을 추구하되, 그 과정 속에 존재하는 고통도 같이 받아들 일 것!

분리하려고하거나 회피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 자체로도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

 



Non efficitur ut nunc studeat multum, sed postea ad effectum veniet.
논 에피치투르 우트 눈크 스투데아트 몰툼, 세드 포스테아 아드 에펙툼 베니어트.
지금 많이 공부해서 결과가 안 나타나도, 언젠가는 나타난다.


Ego sum operarius studens
에고 숨 오페라리우스 스투덴스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