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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2.25 (토)

 

2022년 9월 12일에 애틀랜타에 와서 첫 계약했던 주거지 변경을 하루 앞두고 있다. 내일이면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잠들기 전, 여러가지 생각에 잠겨서 잠시 글을 쓴다.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초반에 느꼈던 허니문 같은 시기는 완전히 지나갔고,생활적으로 불편함이 느껴지지도 않는 그렇다고 막 편하고 좋지도 않은 그런 시기를 지나고 있다.

 

현재의 생활이 끝나가기는 커녕 점점 더 본격적으로 미국 포닥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1. 미국 포닥의 가치가 단순하게 연구적인 성과에만 있지 않음을 깨달아가는 중이다.

• 비교해보니 한국의 연구 수준도 크게 뒤쳐지지 않았다.

• 특히 기술적으로 무엇을 구현해내는 스킬이라던지, 연구실의 장비 환경은 더더욱 그랬었다.

 

1번에서의 느낀점은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무엇이 미국 포닥에 대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일까”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2. 미국의 모든 것들에 적응해나가는 경험이 미국 생활에서의 값어치 자체라고 생각이 들었다.

• 생활 환경 / 문화 / 언어 / 일상생활에서의 사소한 규칙에서부터 법규까지 한국과 많은 것이 달랐고, 때로는 이런 것들이 발목을 잡아서, 연구에 짐이 되었던 것 같다.

• 영미권 뿐만 아니라 타지에서 학위 과정을 하는 학생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생각해보고, 우리 사회가 그것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주는지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을 시간이 점점 경험해주게 만들었고, 앞으로도 더욱 더 그럴 수 있음을 깨달았다.

 

2번에서의 느낀점에도 불구하고 유심히 미국에서 수행하는 연구들을 관찰해보면서 3번을 발견하였다.

 

 

3. 연구적인 부분을 살펴보았을 때, 미국 포닥이 주는 가치는 한 두발짝 앞서나가는 생각들이었다.

• 한국 연구를 했을 때 비록 박사 과정 말년차때부터 성과를 내기 시작하였고, 탁월한 연구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편의 논문을 출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선구자들이 쌓아왔던 탄탄했던 연구적인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우연스럽지만 동시에 필연적으로 한국에서 내가 수행하였던 주제들은 이미 연구제안서 상에서 잘 정돈된 아이템들이었고, 그것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결과물들이 따라왔던 것 같다.

•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에서는 깔린 판위에서 열심히 (성실하게) 노력한 것에 대한 보상 정도라고도 볼 수 있겠다.

• 반대로 지금 하는 연구 주제는 레퍼런스도 충분하지 않고, 오로지 펀더멘털한 기초 지식으로부터 아이디어의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논리를 계속해서 따라가는 중이다. 마치 한국에서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던 연구의 보다 앞단을 채우는 중이다.

• 그렇게 현재에는 무너지지 않는 탄탄한 기본기를 채우는 과정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는 고민했던 것보다 기술적 난이도는 낮거나 비슷하지만,  근본없이 논리를 완성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연구의 매 순간마다 깨닫는 중이다.

• 완성된 결과를 다 본 누군가는 굉장히 쉽게 따라하거나 별 것 아닐수 있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콜롬버스의 달걀과 같은 것이다.

 

 

4. 독립 연구자로 성장하기 위한 마지막 트레이닝 코스라고 정의해본다.

위에서 정리하였던 세 가지를 종합해보니 결국 하나의 큰 결론으로 마무리 될 수 있었다.

• 온전하게 혼자겪어내는 과정에서 현재의 경험을 과거 한국에서의 경험과 비교하면서, 여기에서 내가 무엇을 배우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 이를 통해 내가 한국에서의 학위 생활이 약간은 헛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미국에서의 내가 강박관념처럼 지니고 있는 연구 실적물이라는 것을 조금은 내려놓았다. 내려놓았다기 보다는 빠르게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지 않기로 하였다.

• 이 두가지 경험이 잘 융화된 이후에야 내가 비로소 독립된 연구자로써 첫 발을 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N 개월이 지난 후 느낀점들 1끝 :)